드림/명일방주

[아르세드] 재회 上

비에라 2024. 5. 5. 19:45

무척 까다로운 업무였다.

세드나는 이번 일을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하며 본함으로 향했다. 짙은 안개 너머로 얼핏 커다란 함선의 몸체가 보였다.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출함한 지 정확히 한 달째 되는 날이었다.

할머니께서는 말씀하셨다. 재앙정보전달자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능력은 재앙을 예측하는 것보다 사람을 설득하는 것이라고. 어릴 적의 세드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재앙을 정확히 예측해야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지 않나.
그녀가 그 말에 비로소 공감하게 된 것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한참이 흐른 뒤였다.

예민한 감각과 더불어 냉기를 다루는 아츠 덕에 세드나는 재앙 중에서도 폭설에 관한 적중률이 특히 뛰어났다. 이번 재앙도 정확히 예측해 낸 그녀는 재앙이 휩쓸고 갈 도시를 찾아가 폭설에 대해 경고했다. 사람 한 명을 족히 묻어버리고도 남을 정도의 폭설이 도시를 덮칠 거라고.

그러나 그 도시는 감염자에 대한 불신과 배척이 도를 넘은 곳이었고, 불행히도 세드나는 감염자였다. 지난 재앙에 관한 보고서까지 들고 찾아갔지만, 그녀의 말을 믿어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처음에는 어디서 감히 감염자가 당당하게 찾아오냐며 내쫓길 뻔하기도 했다.

지금 앞에 서 있는 사람이 감염자인지, 비감염자인지 따지는 것보다 생명을 구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냐며, 제발 믿어달라고 시장을 비롯한 관료들에게 애원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했다. 장장 일주일에 걸친 설득 끝에 간신히 재앙이 도달하기 직전에 시민을 대피시킬 수 있었다.

이래서 할머니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던 거구나. 아무리 잘 예측해 봤자 내 말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으니까.

이번에는 다행히 재앙이 찾아오기 전에 대피가 끝났지만, 다음에도 같은 일이 또 벌어지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재앙이 도달할 때까지 사람들이 대피하지 못할 수도 있다.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아서 사람이 죽는다면, 그건 끝까지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한 내 탓일까, 아니면 내 말을 믿지 않은 저들 탓일까. 머리가 복잡했다.


"비에라 씨. 오랜만이네요. 일은 다 끝내셨나요?"
네. 잘 마무리 짓고 왔어요. 쉽지는 않았지만요.
함선에 발을 들이자 가장 먼저 맞아준 사람은 안무실에서 막 나온 츠키노기였다. 그녀의 대답에 츠키노기는 위로하려는 듯이 어깨를 토닥였다. 조심스러우면서도 상냥한 움직임이었다. 따뜻한 손길이 세드나의 마음을 부드럽게 감싸안았다.

"재앙을 전달하는 일이란 쉽지 않죠. 우리는 사람을 구하려는 거지만, 소식을 듣는 사람은 의도가 어찌 됐든 재앙이 자신이 사는 곳을 덮친다는 말을 듣게 되는 거니까요. 받아들이는 게 어렵긴 하겠죠."

아, 그렇겠구나.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듣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지. 그저 사람을 구한다는 목적만 내세웠으니까. 의도가 좋더라도 듣는 사람에겐 안 좋게 들릴 수 있다는 걸 왜 몰랐을까.

이제야 어떻게 사람들을 설득해야 할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고 생각하며 세드나는 그녀에게 감사를 표했다.

"고마워요, 츠키노기 씨. 덕분에 생각이 조금 정리됐어요."
"뭘요. 시간이 있다면 함께 휴게실에서 차라도 마시지 않을래요?"
어쩌면 이렇게 내 마음을 잘 알아줄까. 그녀는 선선히 미소 지으며 화답했다.
"좋아요. 안 그래도 오는 길에 차를 마시며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같이 마신다니 더 좋죠."

휴게실로 향하는 도중, 둘은 시끌벅적한 인사부 사무실 앞을 지나쳤다. 로도스가 시끄러운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만 유달리 사람이 많은 걸 보니 무슨 일이 있나 본데.

그녀의 생각을 눈치챈 츠키노기가 입을 열었다.
"아, 오늘 새로운 오퍼레이터 한 분이 막 도착했는데, 아마 그 영향일 거예요."
그렇구나. 세드나는 소란의 중심을 향해 슬쩍 눈길을 던졌다. 인파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사이로 얼핏 모습이 보였다.

처음에는 검은 날개가 보였다.

그 다음으로는 검은 광륜이 보였다.

그리고.
그 사람의 고개가 이쪽을 향해-

세드나!
헉.
자신을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생생히 들렸다.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기분에 세드나는 가슴을 부여잡고 몸을 숙였다.

왜, 대체 왜. 네가 여기에 있는 거야?

그 일이 있고 나서 마주친 적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로도스 안에서 마주치는 것과 밖에서 마주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오퍼레이터라면 함께 임무를 수행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함선에서 지내면 어쩔 수 없이 생활하는 동안 마주칠 수밖에-

순간 오른 어깨에 가볍게 손이 얹혔다.
말도 안 돼, 분명히 저 앞에 있었는데 대체 언제 내 뒤로 온 거야?
제 어깨에 스스럼없이 팔을 두르던 그날의 아르투리아의 모습이 겹쳐져 소름이 끼쳐왔다. 세드나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빠르게 손을 쳐냈다.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치는 모습이 몹시 불안정해 보였다.

"...비에라 씨?"

아.
그녀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제 어깨에 올라간 손의 주인을 쳐다봤다. 츠키노기는 당황한 얼굴로 허공에 손을 올린 채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저, 정말 죄송해요. 츠키노기 씨.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느라 그랬나 봐요. 아, 그나저나 저는 갑자기 할 일이 생각나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차는 다음에 마실게요!"

네? 비에라. 잠시만요!
츠키노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지만, 세드나는 그대로 뒤돌아 반대 방향으로 무작정 달렸다. 어떻게든 그녀에게서 멀어져야 했다.

간신히 기숙사에 도착한 후 세드나는 문을 쾅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닫았다.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을 어떻게 진정시켜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르투리아가 왔다. 로드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