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세드] 애칭
"세드!"
"...방금 설마 나 부른 거야?"
아르투리아와 함께 연주회를 보러 가기로 한 날이었다. 약속 시간 10분 전, 세드나는 평소처럼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해 주위를 천천히 둘러봤다.
연인, 가족... 전부 다른 사람과 함께였다. 이번 연주회의 테마가 '함께'라서 그런가. 하는 실없는 생각까지 잠깐 할 만큼, 혼자 온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11월 밤의 공기는 쌀쌀했다. 잠깐 공연장 안에서 몸이라도 녹일까 생각하며 등을 돌린 바로 그때 뒤에서 아르투리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세드나는 반사적으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으나, 이내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세드?
하여 그는 미묘한 표정으로 아르투리아에게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지. 내가 아는 세드는 너뿐인걸?
왜 그런 소리를 하냐고 묻는 듯 아르투리아는 웃으며 질문에 답했다.
......아. 혹시... 기분 나빠?
아니... 그냥. 이렇게 불리는 건 처음이라, 좀 어색해서.
아무에게도 애칭으로 불린 적이 없었다. 항상 사랑한다고 속삭여 주시던 부모님도, 하나뿐인 손주를 늘 가장 소중한 보물이라 칭하며 귀히 여기던 할머니도. 항상 세드나라는 이름으로 그를 불렀다.
정말? 아무한테도 애칭으로 불린 적 없어? 신기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너도 나를 애칭으로 불러 보는 게 어때?
...너를?
아르투리아.
그는 입 안에서 하나뿐인 친구의 이름을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굴려보았다.
아르.
이건 어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리아.
앞의 것보다는 낫지만 자연스럽게 입에 붙지 않았다.
...역시, 그냥 이름이 더 낫겠어.
음, 나는 그냥 이름으로 부를게. 이게 더 편하네.
그래? 알겠어. 나는 세드라고 불러도 되지?
네가 원한다면야. 아, 이제 들어가자. 곧 시작할 시간이야.
둘은 함께 객석에 자리했다. 맨 앞자리는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손을 뻗으면 무대에 닿을 것만 같은 거리였다.
이윽고 연주자들이 무대로 올라와 연주를 시작했다.
첼로 소나타.
보통 첼로가 독주, 피아노가 반주하는 형식인데, 이런 식이면 '함께'라는 테마와 안 어울리지 않나? 첼로의 독주곡일 뿐인데.
세드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연주가 시작되자 그의 표정은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두 악기는 대등하게 연주되었다. 둘 중 어느 하나도 튀거나 묻히는 일 없이. 이 곡에서 첼로는 독주용이 아니었다. 피아노 또한 반주용이 아니었다. 둘은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를 보완하며 정교하게 맞물리고 있었다.
진정한 의미의 함께였다.
세드, 연주회는 어땠어?
아, 응? 좋았어. 지금까지 들은 첼로 소나타는 항상 첼로가 독주를, 피아노가 반주를 하는 식이었는데 이번에는 아니더라. 그래서 신선했어.
역시 아직 애칭은 어색했다. 한 박자 늦게 아르투리아의 부름에 반응한 세드나는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그렇지? 이 곡의 원제도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니까. 첼로만을 위한 곡이 아니야. 두 악기 중 하나라도 빠지면 완전하지 않게 돼. ...아! 세드, 우리 함께 소나타를 연주해 보지 않을래? 내가 첼로, 네가 피아노로.
너도 알잖아? 나는 악기 연주에는 소질이 없다는 거 말이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르투리아 네가 가르쳤으니 모르지는 않을 텐데.
알지, 알지- 그냥 농담 한번 해본 거야.
애칭을 입에 담는 순간부터 눈빛에 장난기가 가득했기에 예상은 했지만, 금방 인정하며 씨익 미소 짓는 그 모습에 세드나는 그만 풋 하고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를 따라 덩달아 웃는 아르투리아를 바라본 순간, 세드나의 머릿속에 문득 한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
아리.
여전히 어색한 건 마찬가지라 입에 잘 붙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떠올린 애칭 중 가장 마음에 들었다.
아르투리아, 우리가 언젠가 함께 서로를 애칭으로 부르는 날이 올까?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말을 속으로만 삼킨 채, 그는 아르투리아의 오른손을 꼭 쥐었다.
손을 맞잡은 두 사람의 그림자가 서서히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